브라질 대선: 대통령은 바뀌어도 의제를 정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 4월 29일 브라질 상원 본회의 표결은 7분 만에 끝났다. 룰라 대통령이 연방최고법원(STF) 대법관으로 지명한 조르지 메시아스(Jorge Messias) 법무장관이 찬성 34, 반대 42, 기권 1로 부결됐다.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를 상원이 거부한 것은 1894년 이후, 132년 만이다. 그것도 공화국 수립 5년밖에 안 된 혼란기의 전례를 빼면 사실상 처음이다. 표결 몇 분 전까지 정부는 48표를 확보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노련한 정치인 룰라에게 이보다 뼈아픈 장면은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석 달, 판세는 다시 룰라 쪽으로 기울었다. 7월 15일 제니아우·콰에스트(Genial/Quaest) 조사에서 정부 지지 48%, 부정 47%로, 2024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지지가 부정을 앞질렀다. 21일 나온 리얼타임 빅데이터 1차 투표 조사는 룰라 40%,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 33%다. 대선까지 75일.
스캔들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올 3월만 해도 필자는 룰라의 재선 가도가 흔들린다고 봤다. 근거는 두 가지였다. 1월부터 시행된 소득세 개편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연초부터 예고됐던 금리 인하가 국제 정세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절반만 맞았다. 월 5,000헤알까지 면세, 7,350헤알까지 차등 감면인 이번 개편의 수혜자는 1,500만~1,600만 명이다. 2월 급여부터 반영됐지만 체감까지는 반년이 걸렸다. 여론기관 전문가들은 4월 이후의 회복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Desenrola 채무 재협상, 주 6일 근무제(6x1) 폐지 논의, 그리고 소득세 면세다. 실제로 “빚이 없다”는 응답은 5월 27%에서 7월 31%로 올랐고, “빚이 많다”는 응답은 28%에서 21%로 내려갔다.
그렇다면 마스터 은행(Banco Master) 사태는 왜 룰라를 무너뜨리지 못했는가. 답은 단순하다. 그 폭탄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앙은행이 마스터를 청산하면서 예금보험기금(FGC)이 떠안은 손실은 계열사를 합쳐 약 470억 헤알, 이후 청산이 이어지며 총 560억 헤알까지 불어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보우소나루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한 알레샨드리 지 모라에스 대법관의 부인이 이끄는 법무법인—자녀 둘도 소속돼 있다—이 마스터와 3년간 1억 2,900만 헤알 규모의 자문 계약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주 다니에우 보르카루(Daniel Vorcaro)의 휴대폰에서는 첫 구속 당일 대법관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 흔적이 나왔다. 모라에스는 부인했고, STF는 기술 분석 결과 다른 번호라고 반박했다. 사건을 맡은 토폴리 대법관 역시 금품 수수를 부인했다.
그리고 5월 13일, 인터셉트 브라질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 「다크 호스(Dark Horse)」 제작비를 두고 플라비우가 보르카루와 주고받은 음성과 문자를 공개했다. 요구액 2,400만 달러, 약 1억 3,400만 헤알. 이미 송금된 금액이 6회에 걸쳐 약 6,100만 헤알. 플라비우는 처음에 보르카루와의 관계 자체를 부인했다가, 자료가 공개되자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사적인 영화에 사적인 후원을 구한 아들이었을 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유권자에게 남은 것은 사법부와 야당 후보가 같은 은행가의 전화번호부에 함께 들어 있었다는 그림 하나다.
룰라 쪽도 깨끗하지 않다. 연금(INSS) 국정조사에서 대통령의 아들 파비우 루이스(룰리냐)의 계좌가 열렸고, 4년간 총 1,950만 헤알이 오갔다는 자료가 유출됐다. 다만 자기 계좌 간 이체를 제외한 실제 유입은 520만 헤알이며, 야권이 주장한 “월정액”이나 이른바 ‘연금 마피아’와의 거래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 정도라면, 남의 집 불이 더 크게 보이는 법이다.
세 개의 닻, 그리고 부러진 하나
어느 나라든 거시 안정을 떠받치는 닻은 셋이다. 통화, 금융 시스템, 재정.
첫 번째 닻은 버텼다. 중앙은행은 2025년 6월부터 올 3월까지 20년 만의 최고치인 15%를 유지하다 세 차례에 걸쳐 6월 17일 14.25%까지 내렸다. 정부의 의중과 반대로 움직이며 신뢰를 쌓아온 통화 당국은, 그러나 이번에도 신중하다. 물가는 12개월 누적 4.37%로 다시 올라섰고, 시장 기대치는 연속 목표 상한인 4.5%를 넘어 4.86%까지 밀렸다. 중동 전쟁과 유가가 그 배경이다. 실질금리는 여전히 10% 안팎, 중앙은행이 추정하는 중립금리의 두 배다.
두 번째 닻도 버텼다. 마스터 사태는 시스템으로 번지지 않았다. 대형 기관은 견고했고 자본 부족 신호도 없었다. 여기서 필자가 몸담은 업계 이야기를 하나 보태자면—흔히 “마스터 때문에 중앙은행이 핀테크를 조였다”고들 하지만, 순서가 반대다. 결제기관 최저자본금을 100만 헤알에서 920만 헤알로, 업무 조합에 따라 최대 3,280만 헤알까지 끌어올린 공동결의 14호는 11월 3일에 공포됐다. 마스터가 청산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 뒤인 18일이다. 규제는 이미 장전돼 있었고, 마스터는 그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다. 결과는 조용하고 확실하다. 1,751개 금융기관 중 679곳이 2028년 기준에 미달하고, 월 15건이던 신규 핀테크 인가 신청은 2건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닻은? 망가진 것은 바로 여기, 재정이다.
폭탄 법안의 진짜 주인
한국 독자들은 흔히 룰라 정부를 퍼주기 정부로 읽는다. 진보니까 재정을 가볍게 다뤄 서민 지지를 산다는 것이다. 실상은 다르다.
6월 11일 재무부와 기획예산부는 의회에 계류된 아홉 개 법안—이른바 폭탄 법안(pautas-bomba)—의 재정 영향이 연간 1,110억 헤알에 달한다고 공동 발표했다. 가뭄과 지정학적 충격에 눌린 농가 부채를 심해유전 사회기금으로 재조정해 주고, 종교시설 면세 범위를 넓히고(연 100억 헤알), 의사·치과의사 최저임금을 법제화하고(84억 헤알), 조세 정상화 프로그램을 다시 열고(88억 헤알), 방역요원 연금을 따로 만든다(30억 헤알). 듣기만 해도 시장 친화적이거나 인도적이다. 누가 이런 것을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이 의제의 주인은 집권 여당이 아니다. 다당제 연립정부 구조에서 여당도 제1야당도 단독 과반을 갖지 못하고, 그 틈에서 ‘중도’라는 가면을 쓰고 “내 지역구를 위해”라는 명분을 든 정당 지도부와 양원 의장이 의제 선정권이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장치로 의회를 장악한다. 이들은 중도를 구현하는 정당이 아니라 자기 스폰서를 위해 움직이는 이익 단체다. 메시아스 부결은 그 힘의 시연이었다. 상원의장 알콜룸브리는 다른 이름을 원했고, 결국 그 이름이 이겼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룰라 3기 첫해 총부채비율은 74.4%였다. 올 3월 80.1%를 찍었고, 국가재정처는 연말 83.6%, 2032년 정점 88.6%를 전망한다. 반면 연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전체 예산의 8%, 2,270억 헤알뿐이다. 그중 408억 헤알이 의원들이 각자 지역구에 꽂는 예산 수정안이다. 한국의 재량지출 비중이 40%대인 것과 비교하면, 브라질 대통령이 쥔 운신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만든 페트라 코스타 감독은 브라질을 ‘가문들의 공화국’이라 불렀다. 어떤 가문은 언론을, 어떤 가문은 은행을 쥐고 있으며 이들은 주기적으로 민주주의에 싫증을 낸다는 것이다. 필자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그 과두제의 중심에는 의회가 있고, 의회를 떠받치는 것이 바로 이 다당제 연립 구조다.
케인스는 불렀으나 슘페터는 부르지 않았다
교과서만 놓고 보면 룰라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2024년 성장률 3.4%, 2025년 2.3%. 1,600만 명 감세로 올해 280억 헤알이 가계로 돌아간다. 그런데 왜 체감이 이토록 더딘가.
정부가 한 손으로 쥐여주면 다른 손이 거둬 가기 때문이다. 카드 회전 신용 금리는 연 428~440%다. 은행 평균 대출금리는 33.1%로 2011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다. 부채가 있는 가구는 80.4%로 역대 최고, 신용정보에 연체가 등록된 성인은 8,130만 명, 성인 인구의 절반이다. 이 구조에서 소득세 면세는 소득 증대가 아니라 채무 상환 속도의 조절 장치로 작동한다. 데센홀라가 먹힌 이유도 같다. 브라질 서민의 체감 경제는 임금이 아니라 이자율이 결정한다.
더 본질적인 한계는 따로 있다. 룰라는 케인스를 호명했지만 슘페터를 호명하지 않았다. 연구개발 투자는 GDP의 1.19%로 수십 년째 제자리다. 한국 4.96%, 미국 3.45%, 독일 3.11%, 중국 2.58%인 시대에 말이다. 투자율은 16.8%로 10년 전의 20% 근처에서 내려앉았다.
이것은 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브라질은 언제나 지름길을 선호해왔다. 제2차 산업화를 일으킨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낡은 철도를 되살리는 대신 고속도로를 깔았다. 빨랐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은 OECD 평균 대비 기초교육에는 3분의 1을 쓰고 고등교육에는 80%를 쓴다. 고등교육이 단기간에 표가 나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진보 정부 14년 동안에도 기초교육에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 입장에서 한 가지 덧붙인다. 지난 4월 1일 브라질 개발산업통상부는 한·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공개 의견수렴을 개시했다. 2017년 이후 9년 만이다. 시장 개방을 내걸 것 같은 보수 진영이 오히려 이 의제에 정치 자본을 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상원의장은 보수당에 비판적이고 하원의장은 중립적이며, 협상을 밀어붙이려면 그 두 사람과의 거래가 먼저다. 그 거래에 쓸 정치력을 치안과 재정에 먼저 쓸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룰라 4기라면 전략광물을 지렛대 삼은 다자외교 기조가 이어진다. 누가 이겨도 브라질은 쉽게 문을 열지 않겠지만, 문고리를 잡을 확률은 후자가 조금 높다.
10월 4일, 브라질은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표결에 부칠지 정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그날 투표용지에 없다.


